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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노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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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 서러브레드계[1] 경주마로 클래식 전선에서 동기 하쿠치카라, 헤키라쿠(ヘキラク)와 3강으로 꼽혔다.
2. 혈통[편집]
부마는 현창마에 선정된 명마 토사 미도리다.
2.1. 바우어스톡 모계[편집]
바우어스톡은 1926년에 호주에서 수입되어 평지에서 12승, 장애물에서 10승으로 활약한 경주마지만 수입 당시 혈통표가 분실되어 그 후손들은 서러브레드계로 분류된다. 바우어스톡의 혈통은 공식적으론 알 수 없지만 호주 스터드북 14권에 기재된 암말 브라운 메그(Brown Meg, 1922)와 동일한 말로 보는 견해가 있다. 브라운 메그의 부마는 베이버스톡(Baverstock, 1911), 모마는 프리볼리티(Frivolity, 1914)다. 브라운 메그는 경주성적과 번식 기록이 없다.
- 바우어느솔 (バウアーヌソル,1938) (父 : 투르네솔) - 하레야카(ハレヤカ)라는 경주마명으로 등록되었지만 실제로 출주하진 않고 홋카이도 우라카와쵸의 타케다 목장[5] 에서 번식암말이 되어 특히 토사 미도리와 5마리를 낳아 그 중 3마리의 중상마를 배출했다.
- 아시가라야마 (アシガラヤマ, 1946) (父 : 츠키토모) - 나카야마 대장해 (가을) (1950)
- 키타노 오 (キタノオー, 1953) (父 : 토사 미도리)
- 키타노 히카리 (キタノヒカリ, 1954) (父 : 토사 미도리) - 아사히배 3세 스테이크스 (1956), 현역통산 12전 3승. 키타노 히카리의 모계 3대 후손으로 1984년 엘리자베스 여왕배 우승마 쿄와 썬더[4] 가 있다.
- 아이티 오 (アイテイオー, 1960) (父 : 해로웨이) - 우준 빈마 (1963), 현역통산 12전 4승. 외손자에 히카리 듀얼이 있다.
- 키타노 다이오 (キタノダイオー, 1965) (父 : 다이 하드) - 하코다테 3세 스테이크스[3] , 홋카이도 3세 스테이크스 (1967), 현역통산 7전 7승.
- 키타노 오자 (キタノオーザ, 1957) (父 : 토사 미도리) - 세인트 라이트 기념, 킷카상 (1960), 현역 중앙 17전 6승, 지방 24전 3승.
3. 생애[편집]
3.1. 1955, 1956년[편집]
1955년 8월 13일, 3세(현 2세)에 데뷔전을 승리하고 이어지는 경기에서 2착, 오픈전 승리를 거쳐 11월 유쇼 경주에서 당시 더비 우승 상금을 넘는 가격에 거래되어 조교사 오가타 토키치에 소속된 경주마 하쿠치카라와 처음 맞붙어 3착으로 패배했다. 그 후 2경기에 연승을 올리며 관동의 3세 최강전 아사히배 3세 스테이크스에서 다시 하쿠치카라를 만나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 추월하며 3/4 마신 차로 우승을 거두며 그 해 최우수 3세 말로 선정되었다.
1956년 3월 오픈 전 승리 후 이어진 스프링 스테이크스에서도 하쿠치카라와 함께 오가타의 3우조(三羽鳥)로 뽑혔던 호마레몬(ホマレモン), 켄세이(ケンセイ)를 꺾고 우승했다. 다음 경기에서는 59kg의 부담 중량에 3착으로 패배했지만 평가는 떨어지지 않고 사츠키상에서 1번 인기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16마리 중 15번이라는 외곽 위치를 받아 경주 초반 자리를 잡기위해 스태미너를 소모한 탓인지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 7번 인기의 복병 헤키라쿠에 1 1/4 마신 차로 추월 당해 2착을 기록했다. 이후 NHK배에서는 다시 만난 헤키라쿠를 꺾고 레코드로 승리하며 더비에 나가게 되었다.
더비에서도 1번 인기였지만 27마리 중 25번으로 또 외곽 위치를 받게 되었고 2번 인기 헤키라쿠는 22번, 3번 인기 하쿠치카라는 4번을 받게 되었다. 스타트 직후 외곽의 키타노 오와 헤키라쿠는 좋은 위치를 잡기 위해 급격히 사행해 안쪽으로 찔러 들어갔고 이 때문에 2마리가 낙마했다. 초반에는 하쿠치카라가 선두, 키타노 오가 2번째, 헤키라쿠가 4번째 위치에 자리잡았다. 하쿠치카라는 6번째 전후로 내려왔다가 최종 직선 주로에서 키타노 오등을 제쳐내며 3 마신 차로 우승, 키타노 오는 3착을 한 헤키라쿠에 3 마신 차로 사츠키상에 이어 클래식 2경기 연속 2착을 기록했다. 한편 낙마한 엔메이(エンメイ)는 골절로 안락사, 기수 아베 쇼타로[6] 는 부상으로 결국 은퇴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사고방지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경주 흐름을 감시하는 패트롤 타워가 세워지게 되었다.
여름 휴양 후 마이니치 왕관에서 페어 만나[7] 에 패하며 4착했지만 다음 경주 세인트 라이트 기념에서는 페어 만나와 하쿠치카라를 꺾고 우승했고 이어진 교토 특별에서는 62kg의 부담 중량에 2착을 기록했다. 그리고 클래식 마지막 경주인 킷카상에서 1번 인기로 출주, 후방 대기책으로 나와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 토사 모어를 제치고 팔대경주 제패를 이루어냈다.
이어진 오픈 전 승리 후 이 해 창설된 제1회 나카야마 그랑프리에 6159표를 받아 메이지 히카리에 12표를 앞서 초대 팬 투표 1위 선출마가 되었다. 대회에는 1번 인기 메이지 히카리를 필두로 2번 인기 다이나나 호슈[8] , 3번 인기 키타노 오, 4번 인기 페어 만나, 5번 인기 하쿠치카라, 7번 인기 미드팜[9] , 10번 인기 헤키라쿠 등, 출주마 12마리 중 7마리가 팔대경주 우승마라는 당시 표현으로 사상공전의 호화멤버가 모였다. 레이스에서는 다이나나 호슈가 선두로 나가는 가운데 키타노 오는 후방에서 메이지 히카리와 나란히 4~5번째를 진행했지만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메이지 히카리를 따라잡지 못하고 3.5 마신 차로 2착을 기록했다. 이 대회를 끝으로 메이지 히카리와 다이나나 호슈가 은퇴하고 하쿠치카라는 5착, 헤키라쿠는 12착을 기록했기 때문에 키타노 오는 차세대 최강 후보로 기대받으며 그 해 최우수 4세 수말에 올랐다.
3.2. 1957, 1958년[편집]
1957년 첫 경기였던 메구로 기념(봄)에서는 하쿠치카라 보다 2kg 무거운 63kg의 부담중량을 이겨내지 못하고 5착, 이어진 오픈 경기에서 우승 후 천황상(봄)에 출주했는데 천황상에 우승하면 다시 나오지 못하는 규정에 키타노 오가 나온다면 천황상(가을)에 나가자는 진영이 속출하고 하쿠치카라도 나오지 않았다. 7마리 만 나온 경주에서 키타노 오는 레코드를 세우며 무난히 승리하고 팔대경주 2승 째를 기록했다. 이 후 가을의 올 커머에서는 하쿠치카라와 아랍의 괴물 세이유를 만났다. 부담중량은 키타노 오가 하쿠치카라 보다 1kg 적은 64kg으로 나와 도주하는 세이유를 제치고 하쿠치카라와 경쟁한 끝에 반마신차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어지는 메구로 기념(가을)은 부담중량도 반대가 되었고 결과도 반대로 하쿠치카라가 우승, 키타노 오가 2착을 기록했다. 이 후 하쿠치카라는 천황상(가을)을 제패하며 아리마 기념에서 둘의 대결을 경마팬들이 기대하게 되었지만 키타노 오가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었고 아리마 기념을 우승한 하쿠치카라는 다음 해에 미국으로 원정을 떠났다.
1958년 4월에야 복귀한 키타노 오는 복귀전을 승리했지만 이어진 도쿄배에서는 2착을 기록했고 다음 오픈 경주에서는 1957년 킷카상 우승마 랩소디에 2착으로 패배했고 이 후 홋카이도에서 여름 휴양에 들어갔다. 가을이 되어 경주에 나가기 위해 나카야마로 수송 도중 급성 폐렴에 걸려 10월 14일에 죽었다.
4. 평가[편집]
동기 현창마인 하쿠치카라와 경주에서 10번 만나 키타노 오가 4승에 선착 2회, 하쿠치카라가 4승으로 키타노 오가 상대전적에서 약간 앞선다. 그러나 현역 중 갑작스럽게 죽어 팔대경주 5경기에서 2승, 2착 3회로 끝마쳐 커리어에서는 확실히 하쿠치카라에 밀린다. 1984년 현창마 선고위원으로 있었던 경마평론가 오오카와 케이지로는 "개인적으로는 키타노 오가 하쿠치카라보다 한 장 위라고 생각하고 둘 다 선정되었으면 했지만 현창마에 하쿠치카라를 말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많겠지만 키타노 오는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저서에서 적고 있다.
5. 경주 성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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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혈통서 분실 등의 이유로 혈통이 불확실하거나 서러브레드의 조건인 3대 시조(바이얼리 터크(Byerley Turk, 1680), 달리 아라비안(Darley Arabian, 1700), 고돌핀 아라비안(Godolphin Arabian, 1724))의 후손이 아닌 말, 혹은 서러브레드와 앵글로아랍의 혼혈로 앵글로아랍 혈량이 25% 미만인 말.[2] 중상마만 서술, 볼드 표시는 팔대경주 우승마.[3] 현 하코다테 2세 스테이크스와는 별개의 대회[4] 23전 4승. 13경기만에 미승리전을 탈출하고 사파이어 스테이크스(G3) 2착이 그때까지 최고성적으로 엘리자베스 여왕배에서 14번 인기를 받고 출주해 커리어 유일한 중상 승리로 G1을 따냈다. 부마는 제단(Zeddaan), 모계는 키타노 히카리-> 키타노 후지-> 쿄와 레이디로 이어져있다.[5] 이 후 하이세이코를 배출했다.[6] 쿠모하타, 체리오(チエリオ)등의 주전으로 유명한 기수[7] 페어 만나(フエアマンナ, 1953) - 1956년 오크스 우승마, 통산 29전 13승.[8] 다이나나 호슈(ダイナナホウシユウ, 1951) - 데뷔 후 11연승, 1954년 사츠키상, 킷카상, 1955년 천황상(가을) 우승마. 통산 29전 23승으로 현창마에 선정되지 않은 과거의 명마들 중에서도 아깝다고 평가받는 말이다.[9] 미드팜(ミツドフアーム, 1951) - 1956년 천황상(가을) 우승마. 호주산 말로 지방(오이)에서 중앙으로 이적해 활약하고 다시 오이에서 활동한 말이다. 통산 지방 33전 7승, 중앙 18전 11승.[A] A B C 나카야마 경마장 증축공사에 따른 이전개최[레코드]